Long Slow Distance

김형관은 한국현대미술의 회화의 위기나 종말론이 야기되었던 무렵(90년대)의 그 끝자락에서 다시 회화의 진정성 문제를 찾고자 했던 작가 중 한 명으로, 회화에 대한 궁극적 물음을 가지고 10여 년 동안 ‘본다는 행위’와 ‘그린다는 행위’에 초점을 두어 왔다. 김형관은 그러한 행위의 연장선에서 표현의 대상이 바뀌고 사진이 갖는 가상(이미지)세계의 시점에 대한 해체를 보여주고자 근작 " Long Slow Distance"를 보여준다. "Long Slow Distance"는 가보고 싶은 남극과 에베레스트를 그렸다. 잡지나 관광엽서에 나올법한 조악한 컬러의 풍경 이미지를, 거의 모노톤으로 아주 희미한 채도 차이만으로 확대하여 그림으로 치환 하였다. 일종의 환영이라 할 수 있는 네거티브필름처럼 펼쳐내어 그림 속 이미지와 관객의 인식 차이에서 오는 착각 또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의도에는 '본다는 행위'와 그림의 관계, 특히 사진의 매카니즘, 즉 "그 순간에 그 곳에 있었다"는 과거의 현존성과, "시점을 한 곳으로 수렴하고 고정시키는" 일시점의 기계적 시선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담겨져 있다. 에베레스트는 혹은 남극은 작가가 가보지 못한, 그러나 사진을 통해 존재 증명을 받은, 그래서 우리가 가지 않았어도 믿고 있는 대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보지 못했어도 알고 있는 이미지일 수도 있고, 그저 우리가 믿고 있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욕망이 '부재'를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듯이, 그림의 궁극적 정체성 또한 그 대상의 부재를 통해 욕망의 달성이 끊임없이 연기됨으로써 비로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한다.

 

■ 정헌이, "Long Slow Distance", 김형관 개인전 도록 서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