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작업은 물리적인 차원에서도 찬란한 비의 작용을 담아낸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형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빛의 반사와 투과 작용 때문이다. 유리에서 스스로 발광되는 빛과 조명의 작용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이 나타나고 현현(顯現)한다.

 그릇이 찬란해질 수 있도록 유리를 그라인더(Grinder)로 연마하고 형상을 새기는 작업은 작가 자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예민함과 긴장 상태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상민은 관람객이 자신의 작업을 감상할 때 어떠한 기술이 필요한지, 어떠한 장비를 사용했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작품이 보여주는 빛의 신비함을 마음껏 느끼기를 원한다. 작가가 제작 방법을 공식처럼 외우면서 작업에 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유리를 연마하는 전(全) 과정을 온 몸으로 체득하였으며, 마치 옛 도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숨을 쉬듯이 편안하게 그리고 자신을 잊은 것처럼 무아(無我)의 경지에 올라 작업한다. 아마도 작가는 온 몸으로, 정신과 마음으로, 그리고 영혼으로 유리의 두께와 굴곡을 느껴나갈 것이다.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그 순간은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적인 차원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이상민이 작업하는 순간은 그의 신체적 실존이 세계로 나아가 세계를 열며 세계에 의해 열리는 생생한 경험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이러한 순간을 몇 마디의 말로 설명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질과의 관계에서, 예술가의 임무는 예술적 목표를 통해 조종된 물질의 극복(surmonter un matériau)으로 구성된다. 이 물질의 극복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환상을 지향하는 거소 아니다. 물질에서는 물질에 내재된 미학 외적인 결정이 극족된다. 대리석은 대리석의 특성으로 버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즉 결정된 물리적인 형상을 그만두어야 한다.

Mikhil Bakhtin, Esthétique de la création verbale, Paris: Gallimard, 1984, p. 197.

 

시간의 시학, 찬란한 순간의 기억들 中 발췌

■ 이문정 (조형예술학 박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