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현의 관념 산수: 꿈같은 현실, 현실 같은 꿈


동양에서 산과 언덕, 강과 바다, 풀과 나무라는 산수는 도가 구현된 물상으로, 나아가 최고의 인격이 발휘되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가치가 근본이 되어 발생한 산수화는 동시대의 철학 및 사상의 흐름과 함께 전개되었다. 산수화는 종종 자연 그 자체를 그리는 풍경화라고 오해되지만, 유가, 도가 등 철학적 사유에 근거하여 그리는 이의 관념 속 세상을 담는 것이다. 이번 전시 제목 <레드-개꿈>은 도가적 의미의 <일장춘몽>을 담았다. 부귀영화는 덧없고 세상살이는 한바탕 봄날 꿈과 같으니, 야심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 바깥에서 초연하게 인생을 보내겠다는 작가적 의지의 표현이다.

2006년 런던 첼시 예술대학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Chelsea 대학원 졸업 전시 두 달 전부터 이세현은 한국의 산천을 붉은색 하나로 캔버스에 담은 연작 「붉은 산수Between Red」를 시작했다. 유학 시절 내내 유럽의 유화라는 거대한 미술사적 전통을 극복하는 창작 방법을 고민하던 작가는 겸재 정선(1676-1759)이나 표암 강세황(1713-1791)을 비롯한 조선 시대의 대가들의 작품에서 그 근원을 찾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유해를 뿌린 섬이 부동산 개발로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에서 출발하여, 분별없는 건설로 사라지는 섬과 바다, 산들을 기록하기로 한다.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군에 복무할 때 야간 투시경을 쓰고 바라 본 비무장지대의 풍경은 붉은색이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비현실적인 풍경이며, 그 안에 절대 들어갈 수 없는 풍경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화면 곳곳 배치된 군함, 포탄 그리고 쓰러져 가는 건물 등은 분단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정체와 편린들을 역력히 드러낸다. 「BR-187」(2013)처럼 2013년 「붉은 산수」에는 작가의 지인들 모습이나 유명인의 어린 시절 모습 등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세월호 같은 비극적 사건의 현장에 서서 캔버스 바깥세상을 바라본다. 이번 전시에 포르노 잡지나 인터넷에서 찾은 근육질의 몸들이 한국 지형들과 연결되며 누운 <붉은 산수>가 처음으로 소개된다.

작품에서 이미지들은 대부분 작가를 둘러싼 한국이라는 환경의 풍경에서 출발한다. 어릴 적 바라본 거제의 섬 풍경, 군대에서 보았던 DMZ의 풍경, 뉴스를 통해 보는 한국의 비극적 사고 장면들이 작가의 내면에 심상들로 깃들어 작품의 형상을 만들고 작가의 주체성을 만들어 낸다. 꿈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수많은 사건사고와 충격적인 현실들이 환상과 비이성적 이미지 등의 꿈속 풍경과 결합한다. 이미지는 다시 원근, 투시, 공간의 조합, 음영과 같은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결합하면서 비이성적 현실은 회화적 현실로 재창조된다.

20세기의 수많은 예술 혁명가가 회화의 죽음을, 반 예술 anti-art을, 무 예술 anart의 도래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많은 화가가 지금도 자신만의 미학을 캔버스에 그려 낸다. 라스코 동굴 벽화가 그려진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무려 1만여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회화의 역사는 단절된 적이 없다. 이세현은 그런 회화의 장구한 역사와 위기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해 낸 주요한 화가 중 한 명이다. 강렬한 붉은 색과 밀도 높은 화면 구성은 누구에게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조선 산수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분단 한국의 현실을 소재로 다루며, 비극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국인의 얼굴을 그리는 이세현을 주목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 양지윤(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