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랑을 소요消遙하다

 홍지윤의 그림은 詩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홍지윤의 붓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사이좋은 새들이 홍지윤의 붓끝을 타고 겅중겅중 꽃사이에서 노닌다. 화선지 위에서 이정도면 한 판 제대로 잘 놀았구나 싶은데 무어가 아쉬운지 빈 여백도 없이 공간을 타고 글들이 흐른다. 그리고 그곳에 흐르는 글들은 너무도 정직하게 읽히는 홍지윤의 일기요, 詩다.홍지윤에게 일기와 시, 그리고 그림에는 순서가 따로 없다. 그저 날들을 살며 기록한 일기가 시가 되고, 시가 그림이 된다. 거꾸로 그림이 시로, 일기로 둔갑하기도 하니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적어넣은 삶과 사랑을 순응이라도 하듯 글자와 화면 사이사이를 다시 먹으로 일일이 채워나가는 노동같은 작가적 習은 차라리 유희처럼 보인다.

 

(중략)

홍지윤, 삶과 사랑을 소요하다.  전통의 방법을 막연히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이기에 고수하고 있는 먹과 종이. 그런 그를 두고 화선지 위에 먹과 붓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넣었으니 굳이 옛문헌이나 기록에 의존한다면 현대판 문인화라고 끼워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먹으로 그린 후 미디어와 라이트박스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퓨전 동양화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렇게만 단정지어 부르고 싶지는 않다.시를 짓고, 그림으로 노래하는 홍지윤은 문인보단 이 시대의 예술쟁이로, 퓨전 동양화보단 포스트 동양화로 더 질펀하고 더 폭넓게 제대로 놀아주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마치 장자의 우화에서 나온 이야기 소요유消遙遊와 같다. 장자가 말한 유희는 단순한 의미를 너머 그 속에서 드러나는 자유스런 마음을 승화시켜 얻어지는 정신의 해방을 뜻한다. 이런 유희는 자발적이며 신명나는 유희이다. 내가 홍지윤의 그림을 보며 '한 판 논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그러니 어쩌면 홍지윤은 이미 삶과 사랑을 치열함을 넘어서 소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 김최은영 (미학, 더갤러리 디렉터)